오전 7시가 되니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창밖을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어제 만났던 터키인 친구와 다시 만나 카흐발트라는 터키식 아침을 먹으러 나가야 하기 때문에 피같은 호텔조식을 패스하고 나왔다.

차로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산장처럼 생긴 계곡 속 유원지였다.

 

강원도 홍천의 계곡과 유럽의 고풍스런 느낌을 합치면 이런느낌이 나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비가내려 야외에는 앉지 못하고 산장처럼 생긴 실내에 앉아서 카흐발트를 주문했다.

 

카흐발트를 주문하자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빵을 제공해 주는데, 빵은 무한리필 공기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오는 모든 음식들을 빵에 찍어먹거나 빵위에 올려먹는 식으로 먹으면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정말 터키사람들의 치즈, 올리브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절인 올리브로 모자라 그위에 올리브유를 또 다시 뿌려서 먹고,

올리브유에 치즈를 녹여서 먹기도 하고, 아주 치즈와 올리브로 뽕을 뽑는 것 같다.

치즈들은 한국에서 맛 보지 못했던 진한 맛이 나는 걸로 보아 정말 고퀄인 듯 싶다.

사실 나는 지독한 빵알못(소시지빵, 피자빵만 먹음)에 치알못(네모난 앙팡치즈랑 모짜렐라밖에 모름)이라 치즈 맛을 잘 모른다.

빵과 치즈를 좋아하시는 빵순이, 빵돌이 분들은 꼭 터키로 오세요.

나는 짭짤하고 시큼한 그린올리브를 좋아했는데, 그린올리브는 느끼한 터키음식을 중화시켜주는 김치같은 반찬이다.

그리고 음식들이 전체적으로 조금 느끼하다보니 뜨거운 홍차와 정말 잘 맞는다.

마치 설거지 하듯 뜨거운 홍차가 입안과 목구멍의 기름기를 씻겨주기 때문인걸까..

 

이 것은 추가로 주문한 메네멘이라는 음식이다. 같이 온 터키 친구는 자꾸 멜레멘이라고 하길래, 뭐지 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까 멜레멘은 메네멘의 사투리라고 하더라. 하마터먼 나도 촌티나는 이름으로 외울뻔했다.

 

메네멘은 토마토 베이스로 계란과 여러 채소를 넣고 짜글이 마냥 끓인 음식인데 빵을 찍어 먹거나 빵에 올려서 먹는다. 전혀 느끼하지 않아, 한국인 입맛에 정말 잘 맞는다.

치즈랑 꿀, 버터가 느끼해지면 메네멘을 시켜서 같이 먹어보자. 솔직히 밥을 비벼먹어도 괜춘할 정도로 동양적인 맛이 난다.

 

밥을 먹는데 누가자꾸 창문을 두드리길래 보니까 고영희님이시다.

여기 고양이들은 자기주장이 아주 확실하다. 밥을 먹고 있는데 누가 식탁 밑에서 당신의 바지를 내리려고 한다면 그건 99% 고양이다.

 

빵을 주니까 먹지 않는다. 아마 다이어트 중이라 탄수화물을 먹지 않으시는 듯 하다.

고기나 치즈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고영희님한테 공물을 바칠때는 메뉴를 잘 살펴서 주도록 하자.

 

가격은 둘이 합쳐 150리라(15,000원) 정도 나온 것 같다.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지만, 터키 서민 입장에서는 사실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걸 알고있다보니, 터키인 친구가 자기가 사려고 하던 것을 뜯어말리고 내가 사는게 훨씬 마음이 편했다.

터키에서도 공무원은 한국에서처럼 좋은 직장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월급이 우리 돈 60~7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고 단순 노동자의 월급은 이보다 훨씬 적다고 한다.

이 마저도 리라가치가 폭락하는 바람에, 환율을 계산해보면 더 떨어졌다고 한다.

리라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폭락해서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그만큼 오르지 않으니, 터키인들의 구매력이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정도면 단순히 월급만 비교하자면 태국 서민들과 비슷한 금액을 받는다고 보아도 될 정도다.

물론, 잘사는 부유층은 엄청 잘 살아서, 중산층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빈부격차가 어마어마 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친구도 하루 빨리 터키를 떠나서 한국에서 일을 하고싶다고 한다.

하지만, 리라가치 폭락으로 여행경비 마련이 어렵고, 코시국에 터키인이 한국에 관광비자조차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 터키 서민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일지 공감하기 조차 어려웠다.

하루빨리 이 빌어먹을 코로나 시국과 터키의 경제사정이 나아지기를 바래본다.

 

초록색 가루는 잘게 갈린 피스타치오다.

터키 디저트는 터키 음식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에 맛을 보기 위해 시내로 돌아와서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디저트 가게에 들어오자 친구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이 친구는 밥보다 과자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궁극의 빵순이였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과자 먹지말고 밥 먹으라고 엄마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을 것 같다.

 

나는 터키커피와 바클라바를 주문했고 이 친구는 차이와 이름모를 빵같이 생긴 디저트를 주문했다.

사실 나는 터키 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를 주문하려고 했지만, 터키에서는 관광객이 많은 대도시들을 제외하면,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거의 팔지 않는단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아프게 된다는 속설이 있고, 이를 많은 터키인들이 믿고 있어서,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별로 없다고 한다.

 

바클라바는 수 십겹의 패스츄리?로 되어있는데, 씹으면 그 사이사이에서 설탕물이 넘쳐나온다.

바클라바가 달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달 줄은 몰랐다.

맛있긴 한데, 목이 칼칼할 정도로 달아서,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당뇨병 걸리는 느낌이 난다.

 

친구가 시킨 빵모양 디저트는 식감이 특이했다. 마치 질긴 가죽을 입은 초코 홈런볼을 먹는 느낌이다.

씹으면 가죽 소파처럼 겉 껍질이 푹 꺼지면서, 안에있는 달달한 앙꼬가 입 안을 채운다.

 

전체적으로 터키의 디저트는 맛이 풍부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으로는 지나치게 단 편이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음식은 한국음식보다 단 맛이 없다.

터키의 수프라던가, 우리나라의 떡갈비 비슷한 쾨프테 등을 먹어보면, 우리나라였다면 감칠맛을 위해 살짝 달달하게 만들었을 법한데, 오히려 전혀 단 맛이 없고 짠 맛이 강하다.

거기서 아낀 설탕을 전부 디저트에 쏟아부은 느낌이다.

 

마치 한국인 입맛에서는 달아야 할 건 안 달고(음식) 덜 달아야 할 건 매우 단(디저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세계 3대 요리에 들어가는 음식이 터키 음식이니, 객관적으로 보면 터키 음식이 좀 더 전세계 인의 입맛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겠다..ㅎㅎ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즈미르를 가는 경로에 부르사라는 대도시가 있다. 지나가는 김에 부르사에 살고 있는 다른 친구를 만나고, 진짜 원조 집에서 오리지널 이스켄데르 케밥을 맛보기 위해 부르사를 들르기로 했다.

 

이 날도 날씨가 흐려서 좋은 경치를 볼 수는 없었지만, 터키의 도로 인프라는 우리나라만큼이나 잘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스탄불을 벗어나면 도로가 매우 한산하기 때문에, 과속카메라와 졸음운전만 조심하면 딱히 운전하는데에 어려움이 없다. 그냥 제한속도인 120km/h 에 크루즈를 걸어놓고 무지성으로 달리면 된다.

 

가다가 들른 휴게소

터키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 십키로 구간 마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다.

화장실도 무료로 이용 가능하고, 편의점, 식당, 카페, 주유소 등등이 자리하고 있어서, 떡볶이랑 알감자가 없는 것만 빼면 우리나라랑 거의 똑같아서 위화감이 없다.

 

그리고 스타벅스는 거의 모든 휴게소에 있는 것 같았다.

스타벅스 매장의 구조와 분위기는 한국과 100% 똑같다.

양질의 커피로 피곤함을 달래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자동차에도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이다.

터키의 휘발유가격은 한국보다 저렴하다. 내가 주유할 때는 리터당 12리라(12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주유하고 결제하는 방식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주유하고 주유원이 그 자리에서 결제를 해 주지만, 여기에서는 주유원에게 주유증을 받거나 내가 주유한 주유기의 번호를 기억한 뒤,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 가서 따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편의점에서 기름값을 내고 나면, 결제확인증을 주는데, 이걸 다시 차로 돌아와서 주유원에게 주면 끝난다.

그리고 그 동안에 주유원이 걸레로 자동차의 앞 뒤 유리창을 닦아주는데, 처음에는 난 이게 팁을 달라는 건 줄 알고 팁을 줬었다. 어쩐지 일하시던 분이 방글방글 웃으시면서 고마워 하시더라.

알고보니, 어느 주유소를 가나 걸레로 유리창 닦아주는 건 기본 서비스였다.

터키가 땅 덩이가 넓고 차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몇 시간이고 계속 달리게 된다.

그럼 날벌레들이 앞 유리창에 스커지마냥 박아대서 시체들이 시야를 방해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주유소에서 서비스로 앞 유리창을 닦아 주는 것 같다. 매우매우 유용한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차 잃어버릴까봐 위치 찍는 건 국룰이다.

드디어 도착한 부르사.

역시 주차가 편하기 때문에 쇼핑몰에서 부르사에 사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날부터 인후통과 기침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미크론과 증상이 비슷했는데 과연 코로나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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