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언제 내렸냐는듯이 날씨가 맑아졌다.

온도도 약 13도 정도로 여행하기 정말 완벽한 날씨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즈미르라는 도시로, 이즈미르는 그리스와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부르사에서는 약 350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차로 세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도로에 차들이 거의 없고 뻥뻥 뚫려있어서 운전스트레스는 전혀 없다.

도로컨디션은 한국의 고속도로와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이다.

과속카메라도 거의 없으니까, 모두들 자동차의 한계를 실험해 보자?

 

스쳐가는 풍경들이 너무 이쁘다. 동산들이 올리브나무로 도배되어 있다.

터키사람들은 올리브를 많이 먹는 만큼 많이 키우는구나.

 

이렇게 터키를 운전으로 이동하게 되면, 도시간의 거리가 너무 멀고 주변에 차량이 없어서, 졸음운전을 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졸음운전을 막을 수 있는 간단한 꿀팁?(과속 아님)을 소개할까 한다.

 

터키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소금간이 되어 있는 피스타치오 간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피스타치오들을 운전 중에 햄스터처럼 까 먹어 보자.

피스타치오는 이로 껍질을 까 먹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입을 쉴 틈없이 놀려야 해서 절대 졸릴 수가 없다.

터키의 유명한 특산품 중 하나가 피스타치오이니만큼 맛도 정말 괜찮다.

비슷한 방법으로 해바라기씨를 먹는 방법도 있는데, 해바라기씨는 까먹는 난이도가 조금 더 높아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잠시 카페인을 충전하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다.

며칠 전에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벤티가 17리라(1700원)였는데, 어느 새 20리라(1800원)로 가격이 올랐다.

왜그런가 싶어 리라환율을 확인 해 보니 리라가 다시 90원대로 또 폭락을 했더라.

이제 원화로 계산하기가 조금 귀찮아졌다.

음.. 어떻게 보면 터키는 여행자도 인플레이션을 체험할 수 있는 아주 신기한 나라다.

차라리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신의 한 수 였던 걸까.

심지어, 요새는 비트코인도 이렇게 변동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터키에선 절대로 돈을 한 번에 전부 환전하면 안 된다.

한국 신용카드도 해외결제가 가능한 카드라면 터키 어디에서나 쉽게 쓸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카드를 사용하자.

 

드디어 도착한 이즈미르. 마치 제주공항에 온 것 처럼 도로변에 야자수들이 줄지어 서 있다.

뭔가, 확실히 휴양지에 온 느낌이 난다.

그리고 아랫지방으로 내려와서 그런지, 날씨도 16도 정도로 더 따뜻하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으니, 우선 대충 보이는 해안가 쪽 Otopark에 차를 주차하고 주차장 직원에게 어디가 유명하냐고 물어봤다.

 

바로 앞을 가르키는데, 보아하니 내가 잘 찾아온 게 맞는 것 같다.

바로 앞이 우리나라로 치면 한강공원인가 보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커플들이 공원에서 알콩달콩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어서 날씨가 다시 안 좋아졌으면 좋겠다.

는 장난이고, 분위기가 너무 평화롭고 고즈넉해서 산책하기 좋았다.

배들도 많이 다니는데, 그 중에는 맞은 편 그리스를 오가는 배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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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을 달래던 도중 배고픔을 달래야할 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미디예돌마를 발견했다.

미디예돌마는 홍합에 밥을 올려 한입에 먹는 음식인데, 하나에 3리라(270원) 정도로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몇 개 먹어서는 배도 안 차는데 당연히 싸야지?

홍합과 밥, 둘 다 실패란 없는 음식이므로 바로 도전해 봤다.

맛은 그냥 홍합에 소금과 레몬즙으로 간을 한 안남미밥을 같이 먹는 맛이다.

사실 홍합에서 뿜어나오는 감칠 맛을 기대했는데, 감칠맛이 레몬의 시큼한 맛에 묻혀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덕분에 비린내도 전혀 안 나더라.

여기 사람들도 태국사람들 만큼이나 시큼한 맛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을 대충 찍어서 가수들이 보이지 않는데, 부르는 노래는 전부 터키가요인 것 같았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같이 춤을 춘다.

홍차에는 분명히 알코올이 없는데, 술 한 잔 마시지 않고 어떻게 저런 텐션이 나오는지 한국인으로써는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즈미르의 노을

드디어 솔로도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나도 바닥에 걸터 앉아 먼 바다를 구경해 본다.

어딜가나 바닥에는 먹다버린 해바라기씨 껍질들이 쌓여있다. 여기는 햄스터들이 많이 사나 보다.

넋놓고 멍 때리다 보니, 홍차장사를 하는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보온병에 담긴 홍차를 팔고 간다.

가격은 2리라. 홀로 홍차를 마시며 노을지는 에게해를 음미하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해가 지기전에 숙소를 구하는게 편하기 때문에, 다시 차를타고 이즈미르 시내로 향한다.

 

우리돈 27,000원 정도로 구한 이즈미르 시내의 로컬호텔.

방이 남아 도는지, 혼자 묵는데 더블베드룸을 줬다.

지배인 할아버지는 주차도 대신 해 주시고, 마주칠 때마다 인자하게 웃으시면서 인사해 주신다.

호텔 시설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절대로 27,000원 급의 호텔이 아닌데.. 이즈미르가 이스탄불보다 확실히 물가가 더 저렴한가 보다.

 

방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가본다.

 

길거리의 야자수가 여기는 휴양지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오늘 저녁은 해안 도시에 온 만큼, 생선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 보기로 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이 아니어서 무작정 골목길을 돌아다니는데,

터키의 운전문화는 진짜 해도해도 너무 개판이었다. 솔직히 이건 터키사람들도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사람다니는 좁은 골목길에서 자동차가 후까시를 넣으며 질주하는 건 기본이고,

오토바이가 전속력으로 사람 사이를 스쳐지나간다.

따라서, 로드킬을 당하지 않으려면 알아서 잘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려는지 정말 대책없는 운전문화다.

 

돌아다니다가 발륵에크멕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발륵에크멕은 생선케밥 혹은 고등어케밥이라고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음식인데,

바게트 같은 빵 사이에, 튀기거나 구운 생선을 넣어 만든 샌드위치 비슷한 음식이다.

터키에서는 구운 육고기만 케밥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생선 케밥이라는 건 없다고 한다.

 

발륵에크멕과 터키 요거트인 아이란.

발륵에크멕을 주문하고 주인아저씨가 마실 것을 물어보기에 아이란을 달라고 하니, 아저씨가 웃으며 따봉을 날린다.

이어서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묻기에 코레(한국)라고 대답하니 예상하던 대답이 들려온다.

페네르바체~ 페네르바체~ 김민재~ 김민재~

대부분 남자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페네르바체와 김민재 이야기를 꺼내는게 국룰인 것 같다.

터키에서 축구의 인기가 굉장히 높고 우리나라의 김민재 선수가 페네르바체라는 터키 축구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여러 방면으로 한류가 터키를 휩쓸고 있는 행복한 요즘이다.

 

발륵에크멕의 맛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생선에 간이 좀 짜게 되어있는데, 이게 겉의 빵과 신선한 야채를 같이 베어물게 되면 간이 딱 맞게 된다.

빵 때문에 목이 막히거나 양파가 살짝 칼칼할 때는 아이란을 마셔주면 기가막히게 어울린다.

먹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몰려와서 바지끄댕이를 붙잡는다.

하지만, 너무 맛있어서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미안하게도 고양이들에게 줄 건 남지 않았다.

총 가격은 25리라(2200원) 정도였다. 한 달을 살고 싶게 만드는 물가다. 

 

이대로 그냥 호텔에 돌아가기는 뭔가 아쉬워서, 다른 식당에서 뭐 하나 더 집어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시킨 음식은 타북듀륨.

타북은 닭고기라는 뜻이고, 듀륨은 케밥을 또띠야같은 얇은 빵으로 감싸서 랩처럼 먹는 방식을 뜻한다.

보통 이태원에서 파는 케밥들은, 사실 듀륨형태로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난 한국에 있을때 케밥이라는 말 자체가 이렇게 랩으로 감싼 형태를 뜻하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케밥이라는 말은 그냥 불에 구운 고기를 터키에서 다 케밥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고기를 접시에 담아 먹으면 그냥 케밥, 또띠아에 감싸서 먹으면 듀륨, 쌀밥이랑 먹으면 필라브 이런식으로 먹는 방법과 조리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케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시킨 타북듀륨 단품가격은 14리라(1300원)이다.

이 돈으로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게 있긴 할까? 정말 너무 저렴하다.

 

닭고기가 가득 들어있다.

닭이야 뭐 어떻게 요리하던 맛이 없을 수가 없으니, 아주 익숙한 맛이 난다.

포장해가서 운전 중에 먹으면 이만한 요깃거리가 없을 것 같다.

이태원에서 먹으면 8,000원은 할텐데.. 여기서는 너무나도 저렴하구나.

 

 

터질듯한 배를 부여잡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리만큼 도시가 깜깜하다.

이즈미르가 시골이라서 그런가? 하고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데, 뭔가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엄청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혹시라도 위의 사진들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엄청난 눈썰미를 가진 사람이다.

 

자세히 보면, Sok 편의점과 약국(ECZANE) 앞에 기름으로 작동하는 전기발전기가 나와있다.

거리 전체가 전부 정전이 나서, 호텔이고 편의점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전기가 나간 상황이다.

그런데 웃긴 건, 어느정도 큰 가게들은 각자 다 발전기를 갖고있고, 마치 정전이 익숙한 듯이 바로 발전기를 꺼내 쓰고 있었다는 거다.

그 말인 즉슨, 정전이 흔한일이라는 건데, 이즈미르 같은 대도시의 전기사정이 이러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우리나라였다면, 민원이 빗발칠뿐만 아니라 뉴스에까지 나오고 난리가 났을텐데.

터키가 확실히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운 상황이긴 한가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묵는 호텔거리도 전부 다 정전이었다.

다행히 내가 묵는 호텔은 그 중에서도 좀 급이 있는 호텔이었는지, 자가 발전시설이 있어서 객실까지 전기가 공급됐다. 전기 공급이 재개되는데까지는 약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내일은 이즈미르를 떠나 셀축이라는 작은 마을로 떠나야 하기에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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